지쇼대사 엔친 (814-891)

헤이안 시대 전기 천태종의 고승입니다. 당나라에 유학했던 8명의 승려를 뜻하는 입당팔가 중 한 명입니다. 온조지(미이데라) 증흥의 조상이자 천태종 사문파의 종조로 추앙 받습니다.

엔친은 814년 사누키국 나카군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님이 되기 전의 성은 와케였습니다. 어머니는 사이키 가문 출신으로 구카이의 질녀에 해당됩니다. 15세에 숙부를 따라 히에이잔에 올라가 당시 천태종 좌주였던 기신을 사사하여 20세에 수계합니다. 그리고 산 속에 들어가 12년에 걸친 수행에 돌입합니다. 이는 엔랴쿠지를 창건한 젊은 날의 사이초의 수행에서 비롯된 것으로, 12년동안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오로지 불법 연마에만 전념하는 혹독한 수행입니다. 산에서 수행 중이던 838년 겨울 암혈로 들어가서 참선을 하던 엔친은 마침내 금색 부동명왕의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후 엔친은 엔랴쿠지에서 진언의 최고책임자로 임명되었고, 이어서 조정이 승려에게 임명하는 관직 중 하나로 궁중에서 천황의 안녕을 비는 내공봉 십선사로 임명됩니다.그리고 851년 훗날 신하의 신분으로 최초의 섭정이 되는 후지와라노 요시후사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입당구법의 여정을 떠나게 됩니다. 당나라로 건너간 엔친은 천태산 국청사, 월주 개원사 등 여러 사찰을 방문하여 덕망 높은 승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며, 특히 장안 청룡사에서는 법전 화상으로부터 밀교의 깊은 뜻을 전수 받았습니다. 858년 엔친은 방대한 양의 서적과 그림, 조각상, 법구류를 가지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이때 선상에 나타난 노인이 자신을 신라 묘진이라 하면서 엔친에게 교법을 수호하겠노라 맹세했다고 합니다.

귀국 후 엔친은 온조지를 다시 부흥시켜 천태종 별원으로 하였고, 경전 등 당나라에서 가져온 물품을 당원에 보관했습니다. 868년 제5대 천태 좌주로 보임되고 891년 10월 78세로 입멸할 때까지 천태종의 융성과 천태 밀교의 발전을 위해 힘썼습니다. 927년 그 업적을 기리며 다이고 천황으로부터 ‘지쇼대사’의 시호를 받았습니다.

일반 관람
온조지 당원 대사당, 온조지 신라선신당, 무라쿠모바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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